첫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를 처음 이야기했을 때는 너무 짜릿했지만,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생각보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
퇴사 다음날이 주말이기 때문일까.
월요일이 되면 퇴사했다는 게 더 실감 날 것 같다.
전 회사는 첫 회사로, 중소기업이었다.
대학교 전공과는 다른 직무였지만 꽤나 업무는 재밌었다.
하지만 일이 재밌음과는 별개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열약한 환경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동료와 상사를 만났다.
대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같은 전공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직장은 비슷한 사람도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의 시간을 잡아놓고 맨날 30분씩 늦게 오는 상사
당연히 해줘야 할 4대 보험을 미루는 상사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제품을 비싸게 파는 기획을 내놓는 상사
별로 상관없지 않냐는 동료
작업을 위해 필수적인 프로그램 안사고 크랙으로 다운받으라는 상사
여하튼 내 기준에서 너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첫 회사에서 꽤나 오래 버텼다.
성격상 잘 그만두지도 못 하고 워라밸은 괜찮았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스스로 속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회사를 다니면서도 업무적인 발전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부당한 처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암담하고, 또 그만두지 않는 내가 미워서
스스로 자존감을 많이 깎아 먹었다.
회사에 1년 정도의 경력을 쌓았을 때부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왔지만, 표지에서 끝나거나
프로젝트 1개를 다 만들지 못하고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그냥 자포자기하기도 했다.
그런 회사를 다니면서도 안주하는 나인데
과연 더 크고 좋은 회사를 가면 그곳에서는 적응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신감이 많이 없었다.
내 바로 위에 상사는
"큰 회사 가면 별거 없다. 이런 작은 곳이 일도 편하다.
큰 곳은 모든 게 경쟁이라 살아남기가 힘들다."
늘 이런 말을 하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바로 가스 라이팅 아닌가
그 당시 상사의 말에 동의하면서 새로운 환경이 너무 무서웠다.
지금은 내가 어디를 가든 잘 적응할 거란 믿음이 있다.
왜냐면 그런 환경에서도 버틴 나이기에...
회사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경영진
경영진은 서로 육두문자를 날려가며 우리 앞에서 싸우기도 했는데
그러고는 자기들이 직접 해야 할 의사소통을 우리에게 시켰다.
그러면서 항상 우리를 위해 자신들이 애쓰고 있음을 우리에게 피력했다.
실제로 우리를 위했더라도 그렇게 자신의 애씀을 알아달라고 떼쓰는
상사가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역시 그 회사는 앞으로 미래가 안보였다.
앞으로 현상태를 유지나 할 수 있을지...
이직을 하고 회사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다.
회사는 거지같았지만 나는 내일을 열심히 했고
포트폴리오에 넣을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했다.
하기 싫었던 포트폴리오 작업도 가고 싶은 기업이 생기니
정말 불같이 끝낼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보니 나는 충분히 경쟁력 있는 사람이다.
왜 그런 곳에서 한 없이 자신을 낮게 싸잡아봤을까.
그나마 그 회사에서 버틸 수 있던 건 함께했던 동료가
잘 맞았고 서로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성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서 평소에 좋게 보았던 사람이 오히려 눈을 뒤집고
내 등에 칼을 꼽자고 달려드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모르는 것
퇴사를 정말 오랫동안 생각해오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지금의 회사가 불만족스럽다면 내 상태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업무능력이 이 정도여서 이런 회사가 최선일 수도 있다.
1년 ~2년 차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능력이 아무리 없어도 여기보다는
더 좋은 곳에 갔을 텐데, 게을러서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내 업무능력은 좋지만 회사가 진짜 거지 같은 곳일 수 있다.
그러면 정말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내가 퇴사하겠다고 말하자 경영진이 연봉 인상을 이야기하며
회유하다가 안되자 나중에는 협박을 하더라
나를 붙잡자 나는 확신했다. 정말 지금이 떠나야 하는 타이밍이구나.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난다고 했다.
나는 입사는 쉽게 했지만, 퇴사는 정말 어렵게 했다.
인수인 계문 제로 경영진이 정말 피곤하게 했다. 나는 법적으로 정해진
한 달 보다도 더 일찍 퇴사 날짜를 말했음에도, 후임이 정해지지 않으면
계속 출근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고, 그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은 퇴사했고 코로나는 심해졌다.
어디든 떠나고 싶었지만 어려울 것 같고, 해보고 싶던 일이나
집에서 실컷 하자 싶다.
수고했다 나 자신~!
이제 그림도 블로그도 다시 꾸준히 해야지~
'일상 잔 > 일상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덕수궁 미술관 -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0) | 2021.03.26 |
---|---|
[사는 잔]감각적인 폰 케이스_테이칼트 (0) | 2021.01.08 |
[먹는 잔]회현역 카페 피크닉 (0) | 2020.10.21 |
[팁 잔]요거트 면보 관리하기 (0) | 2020.08.29 |
[투명한 잔]금요일 저녁은 어떻게 보내도 행복하다 (0) | 2020.08.28 |
댓글